732편의 초록을 분석한 연구결과에서는 서사적인 문체로 작성한 초록이 그렇지 않은 초록보다 더 많이 인용되었습니다. 서사의 문체로 초록을 작성한다는 것은 분량을 풍부하게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초록을 구성하는 세 가지의 표준 항목인 연구의 목적과 연구의 방법, 그리고 연구의 결과를 인과관계와 구체적인 언어로 조합해서 하나의 스토리 라인을 만들며 작성해야 합니다.
이 글의 순서 6개 항목
2016년 12월, 학술지 PLOS ONE에 실린 논문 한 편이 과학자들이 모인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제1저자는 워싱턴대학교 해양환경대학원을 갓 졸업한 신진 연구자 Annie Hillier였습니다. 연구의 질문은 무척 소박하였습니다. 기후변화 를 다루는 논문이 5년마다 2배로 쏟아지는데, 왜 어떤 논문만 읽히고 인용되는가. 연구팀은 내용이 아니라 문체를 의심하였습니다. 19개 저널에서 732편의 초록을 수집하고, 155명의 평가자에게 각 초록에 대해 ‘서사성(narrativity)’을 점수로 평가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구의 결과는 기존의 통념을 흔들었습니다. 이야기처럼 쓰인 초록일수록 더 많이 인용되고 있었습니다. 과학의 영향력은 과학 그 자체가 결정한다고 믿어 온 연구자들에게, 갓 졸업한 저자는 “서사의 문체로 초록을 쓰는 것이 과학 문헌 전반에서 논문의 수용도와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라는 시사점을 던진 것입니다. 초록을 쓰는 법을 모르는 분들에게 Hiller의 연구와 초록을 작성하는 방법을 소개해 드립니다.
서사적인 초록은 어떻게 등장하였는가?
Hiller et al.(2016)은 심리학과 문학이론에서 ‘서사성’의 지표를 빌려 왔습니다. 사람은 지루하게 나열된 설명보다는 서사를 더 잘 이해하고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 두 분야가 오래 전에 내린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평가자들은 논문의 초록마다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언어를 사용하는지, 문장과 문장이 인과관계로 이어지는지, 독자를 향하는 제안이 등장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응답이 초록의 ‘서사성’ 점수로 평정되었습니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야기하는’ 혹은 서사적인 문체로 작성한 초록의 논문일수록 피인용 빈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효과는 저널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영향력 지수(impact factor)가 높은 저널일수록 서사적인 논문이 더 많이 게재되었고, 이러한 논문들은 더 자주 인용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연구팀은 자신들의 연구에서 한계점도 드러 내었는데, 탑 저널이기 때문에 잘 읽히는 논문만을 선별한 것인지, 또는 서사적인 문체로 작성한 논문이 어느 저널에서라도 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iller et al.(2016)의 연구결과는 서사적인 문체로 작성한 초록이 논문의 수용도와 가시성을 높이는데 유리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 Hillier, A., Kelly, R. P., & Klinger, T. (2016). Narrative style influences citation frequency in climate change science. PLOS ONE, 11(12), e0167983.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167983
서사적 문체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Hiller et al.(2016)가 측정한 ‘서사성’은 소설의 기법이 아니라 문장의 작성 습관입니다. 첫째는 구체적이고 감각을 자극하는 언어입니다. “심리적 요인이 성과에 영향을 미쳤다”보다는 “야간 근무자의 수면 부족이 판단 오류를 늘렸다”가 더욱 서사적으로 표현한 문장입니다. 둘째는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연결하려는 단어입니다. 문장들이 “그리고”로 나열되지 않고 “따라서”, “그 결과”로 이어질 때 초록은 서사성이 드러납니다. 셋째는 문장 사이의 명시적인 연결입니다. 앞 문장의 핵심어를 다음 문장이 이어받으면 독자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넷째는 독자를 향한 제안입니다. “이 결과는 교대근무 사업장의 안전 지침 설계에 활용될 수 있다”처럼, 결과가 무엇에 쓰이는지를 마지막 한 구절로 정확하게 짚어 주는 것입니다.
초록에 관한 유명한 조언이 하나 있습니다. 초록은 무조건 짧게 써야 좋다는 조언입니다. 그런데 이 조언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Weinberger et al.(2015)은 8개의 학문 분야에서 100만 편의 초록을 수집하였습니다. 그리고 초록의 분량과 피인용 횟수의 관계를 조사하였습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초록을 짧게 써야 한다는 생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초록의 분량이 짧을수록 인용을 더 적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초록의 분량을 억지로 줄일 필요가 없습니다. 학술지가 허용하는 글자 수 안에서, 연구의 목적과 연구의 방법, 그리고 연구의 결과를 적절한 분량으로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 Weinberger, C. J., Evans, J. A., & Allesina, S. (2015). Ten simple (empirical) rules for writing science. PLOS Computational Biology, 11(4), e1004205. https://doi.org/10.1371/journal.pcbi.1004205
서사의 문체는 초록을 구성하는 표준 항목인 연구의 목적-방법-결과와 충돌하지 않는가?
아니요, 충돌하지 않습니다. 먼저 초록을 이루는 표준적인 항목부터 살펴보겠겠습니다. 초록은 세 가지의 항목으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연구의 목적과 연구의 방법, 그리고 연구의 결과입니다. 초록에는 연구의 배경을 길게 소개하는 문장을 담지 않습니다. 선행연구의 결과와 사례를 친절하게 나열하는 문장도 넣지 않습니다. 연구의 의의를 부풀리는 문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문장들이 담길 곳은 초록이 아닌 논문의 본문입니다. 학위논문의 초록과 국내 학술지, 그리고 대부분의 해외저널은 모두 이 원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사의 문체로 무엇을 작성하라는 말인가요? 연구의 목적-방법-결과가 서사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동일한 세 문장이라도 뚝뚝 끊어서 늘어놓으면 기계적인 목록처럼 읽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그 결과”로 이어 주면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담는 내용은 같은데, 이어지는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서사적인 초록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문헌적인 근거로 뒷받침할 수 있는데, Martínez & Mammola(2021)는 21,486편의 논문을 조사하였습니다. 이들의 연구 목적은 논문의 제목과 초록에 전문용어(jargon)가 얼마나 등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논문일수록 그렇지 않은 논문과 비교해서 인용을 더 적게 받았습니다. 인용을 많이 받은 논문들의 초록에서는 전문용어가 전체 단어의 1%에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는 Plavén-Sigray et al.(2017)이 1881년부터 가장 최근에 출판된 70만 편의 초록을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과학 영역을 다루는 논문의 초록은 시간이 경과할 수록 읽기가 어려워져 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쉽게 읽히는 초록은 그것만으로도 눈에 띄는 초록이 됩니다.
- Martínez, A., & Mammola, S. (2021). Specialized terminology reduces the number of citations of scientific paper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288, 20202581. https://doi.org/10.1098/rspb.2020.2581
- Plavén-Sigray, P., Matheson, G. J., Schiffler, B. C., & Thompson, W. H. (2017). The readability of scientific texts is decreasing over time. eLife, 6, e27725. https://doi.org/10.7554/eLife.27725
서사체로 초록을 작성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다섯 단계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내용을 초록의 작성 순서로 정리하겠습니다. 아래의 다섯 단계를 따라서 하시면 됩니다, 한 시간 정도면 서사체로 작성된 한편의 초록이 완성됩니다.
- 첫째, 세 개의 문장을 먼저 적습니다. 연구의 목적을 한두 문장으로 적고, 연구의 방법을 한두 문장으로 적고, 연구의 결과도 한두 문장으로 적습니다. 이 세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문장은 아예 쓰지 않습니다.
- 둘째, 적어 놓은 문장들을 연결어로 이어 줍니다. 목적 문장 다음에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를 붙여서 방법 문장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방법 문장 다음에는 “그 결과”를 붙여서 결과 문장으로 넘어갑니다. 이렇게만 작성해도 서로 단절되어 있었던 문장들이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이어지게 됩니다.
- 셋째, 각 문장에서 등장하는 주어와 동사를 정확하게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서 “직무만족에 관한 분석이 수행되었음”이라는 문장은 완전한(complete) 문장이 아닙니다. 만약 “본 연구는 간호사 300명을 대상으로 직무만족의 평가를 위하여 설문조사를 수행하고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였다”로 수정한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넷째, 어려운 전문 용어와 약어(abbreviation)의 개수를 세어 봅니다. 그 연구 분야의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는 100단어에 1개 이하로 줄입니다. 약어도 반드시 필요한 한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풀어서 씁니다.
- 다섯째, 완성된 초록을 소리 내어서 읽어 봅니다. 읽다가 숨이 차는 문장은 두 문장으로 자릅니다. “그리고”로만 이어진 자리가 있으면 “따라서” 혹은 “그 결과”로 바꿉니다. 마지막 문장이 “본 연구의 결과는 OOO에 활용될 수 있다”로 마무리가 된다면 서사체로 포장된 초록이 완성된 것입니다.
| 가상 시나리오: 체육학 박사과정생인 D씨는 KCI 등재 학술지를 준비하면서 초록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안을 읽어 보니 세 가지의 문제를 발견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문장들이 “OOO에 관한 연구”, “OOO이 분석되었음”처럼 흐릿하게 마무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문장과 문장을 이어 주는 연결어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약어는 6개나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D씨는 서사체 초록의 작성 단계를 밟아 보았습니다. 먼저 초록에서 연구의 배경을 설명하는 2개의 문장을 찾아서 서론으로 옮겼습니다. 따라서 초록에는 연구의 목적과 연구의 방법, 그리고 연구의 결과, 이 3가지만 남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연구의 목적과 연구의 방법 사이에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를 삽입하고, 연구의 방법과 결과 사이에는 “그 결과”를 넣었습니다. 선명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던 연구 결과의 내용을 담은 문장도 수정하였습니다. “운동 프로그램의 효과가 검증되었음”이라는 문장은 “12주 기간동안 수행한 순환 운동이 중년 여성의 근감소 지표를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로 바뀌었습니다. 6개의 약어는 2개만 남기고 모두 풀어서 작성했습니다. 수정을 하고 나니 초록의 분량이 변화하지 않았음에도 문장의 수는 9개에서 6개로 줄었습니다. 이전의 문장보다 더욱 충실해진 것입니다. 이 사례는 프라임 컨설팅이 실무 현장을 체험한 상황을 참고하여 재구성한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 서사적 문체란 소설처럼 쓰라는 뜻인가요?
A. 아닙니다. 초록에 등장인물을 만들거나 극적인 표현을 묘사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 가지 종류의 글쓰기 습관에 관한 것인데, 구체적으로 (1) 문장과 문장을 “따라서”, “그 결과”로 이어 주는 습관, (2) 의미가 선명하지 않은 표현 대신에 구체적인 표현을 쓰는 습관, 그리고 (3) 연구 결과가 어디에 쓰일 수 있는지를 한 구절로 알려 주는 습관입니다.
Q. 초록에 연구의 배경이나 의의를 넣어도 되나요?
A. 원칙적으로는 넣지 않습니다. 초록에는 연구의 목적, 연구의 방법, 그리고 연구의 결과만 담는 것이 표준입니다. 연구 배경을 소개하는 문장과 선행연구 또는 관련 사례의 부족을 지적하는 문장은 초록에서가 아니라 서론에서 쓰는 것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투고하려는 학술지가 요구하는 초록 양식, 또는 소속 대학원이 요구하는 양식이 연구의 배경이나 연구의 결론까지를 포함하라는 가이드라인(예., author guidelines)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때에는 그 학술지나 대학원의 양식을 따르면 됩니다.
Q. 초록의 분량은 짧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
A. 아닙니다. 한 연구팀이 8개 분야의 초록 100만 편을 대상으로 분량과 피인용 간의 관계를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짧게 쓴 초록일수록 인용을 더 적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초록의 분량을 억지로 줄일 필요가 없습니다. 학술지가 허용하는 분량 안에서 연구의 목적-방법-결과를 풍부하게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 전문용어의 사용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나요?
A. 기준은 100단어에 1개 이하입니다. 21,486편의 논문을 조사한 연구에서, 인용을 많이 받은 논문들의 초록은 전문용어가 전체 단어의 1%도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분야의 연구자만 아는 용어는 본문에서 쓰고, 초록에서는 풀어서 쓰는 것이 안전합니다. 약어도 1-2개까지만 사용하기를 권장합니다.
Q. 국문 초록과 영문 초록에 모두 적용되나요?
A. 물론입니다. 문장을 인과관계로 이어지게 하는 것, 구체적으로 쓰는 것, 연구의 목적과 방법과 결과만 담는 것은 어느 언어로 작성하는 논문에서도 통하는 원리입니다. 영문 초록을 쓸 때의 요령은 하나입니다. 국문 초록의 흐름을 그대로 옮기되, 많은 명사를 모으지 말고 동사가 살아 있는 문장으로 쓰는 것입니다.
Q. 그런데 서사적으로 초록을 쓰면 과장하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을까요?
A.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서사의 문체는 사실과 사실을 이어 주는 방식일 뿐, 주장을 부풀리기 위한 요령이 아닙니다. 흥미로운 연구의 결과를 소개하자면, 한 연구팀이 40년 동안 출판된 논문의 초록을 조사하였더니, ‘nove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연구를 강조하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조하는 형용사를 하나 더 넣는 것보다, 연구의 결과와 초록의 문장을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더 정직하고 논문심사 과정에서도 더 유리하게 작동합니다.
결론
이 글의 도입부에서 소개한 Hiller et al.(2016)의 연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석사를 갓 마친 연구자의 첫 논문이 왜 그렇게 화제가 되었을까요? 그 동안 많은 과학자들은 논문의 인용이 연구자 간의 경쟁으로 결정된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Hiller et al.(2016)의 연구 결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논문의 내용이 서로 유사해도, 이야기처럼 읽히는 초록을 담은 논문이 더 많은 인용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글을 쓰는 방식이 논문의 성적을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의 핵심을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야기처럼 읽히는 초록을 쓰기 위해서는 초록이 갖추어야 할 표준 요소인 연구의 목적과 연구의 방법, 그리고 연구의 결과를 정직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다만, 연구의 목적에서 연구의 방법으로, 그리고 연구의 방법에서 결과로 물 흐르듯이 이어지게 작성하면 됩니다. 그 흐름이 바로 초록이 드러내야 하는 서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