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저널의 시니어 저자 대다수는 그 저널에 자신이 주니어 저자로 먼저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입니다. 시니어 연구자와의 동반 출판 경험은 이후의 게재 확률과 인용을 함께 높여줍니다. 610만 편에 달하는 자료로부터 저자 순서를 분석한 연구문헌은 샤프롱의 효과가 특히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를 다루는 탑 저널에서 가장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53년 4월 2일, 케임브리지에서 보낸 한 편의 논문 원고가 저명한 학술지 Nature의 편집부에 도착하였습니다. 원고의 저자는 촉망받는 25세의 미국인 청년과 36세의 영국인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Nature에 논문을 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원고는 놀랍게도(?) 데스크 리젝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원고에는 노벨상 수상자인 Lawrence Bragg가 쓴 짧은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고, 편집부는 그 편지를 근거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3주 뒤에 출판된 이 논문이 바로 인류의 세상을 바꾼 Watson과 Crick의 DNA 이중나선 구조를 다룬 논문입니다. 65년이 지난 뒤에, 물리학자들은 이 일화가 한 천재의 특혜가 아니라 학술 출판의 생태계에서 관찰되고 있는 관행적이고 통계적인 규칙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탑 저널에 게재를 준비하는 분들께, 샤프롱(chaperon)의 효과라는 규칙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샤프롱 효과는 무엇인가?
‘샤프롱’은 사교 무도회에 처음 나서는 젊은이를 곁에서 지키는 시니어 보호자를 의미합니다. Sekara et al.(2018)은 이 단어를 학술 출판의 맥락으로 가져왔습니다. 연구진은 1960년부터 2012년까지 386개의 저널에 게재된 논문 610만 편의 저자 순서를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각 논문의 마지막 저자인 교신저자, 즉 연구 책임자의 이력을 조사하였습니다.
연구진은 교신저자를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그 저널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신규’ 저자, 약간의 공저자 경험을 가지는 ‘주니어’ 저자, 그리고 이미 많은 출판 이력을 가지고 있는 ‘시니어’ 저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연구결과에서는 Nature와 Science, PNAS 등의 탑 저널에서 주니어로 먼저 게재 경험을 쌓은 후에 시니어 저자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배 연구자와 동반하며 어려운 관문을 먼저 통과해 보는 것, 연구진은 이 과정을 샤프롱 효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 Sekara, V., Deville, P., Ahnert, S. E., Barabási, A.-L., Sinatra, R., & Lehmann, S. (2018). The chaperone effect in scientific publishing.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5(50), 12603–12607. https://doi.org/10.1073/pnas.1800471115
탑 저널 게재의 문은 얼마나 좁은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Nature에 주니어 저자로서 한 번의 출판경험을 가지는 연구자가 이후에 교신저자로 올라갈 확률은 약 10%였습니다. 그리고 주니어 저자의 논문 게재 건이 4배로 늘어나면 그 확률은 20% 가까이로 증가하였습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통과해야 하는 문이 넓어지는 셈입니다. 효과의 크기(effect size)는 연구 분야마다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작위 배열과 비교한 효과의 배율은 수학 0.73, 물리학 0.91, 화학 1.01, 의학 1.21, 생물학 1.41의 순서로 커지고,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를 다루는 저널에서는 1.68로 크기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통과해야 하는 문의 모양도 저널마다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학 분야의 NEJM에서는 시니어 저자의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물리학의 Physical Review D에서는 기성 저자의 비중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그런데 Nature에서는 지난 10여 년 사이에 신규 저자의 비중이 비교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게재 경험이 없이 Nature의 교신저자가 되는 사례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인용 격차의 패턴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는데, Nature에서는 신규저자 vs. 시니어 저자가 교신저자에 등장한 논문들을 서로 비교하여 게재된 후 5년 이내의 피인용 수는 전자가 후자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교신저자의 출판 경험이 게재의 확률 뿐만 아니라 게재 이후의 확산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노벨상 수상자의 상당수가 다른 수상자의 제자였다는 Zuckerman(1967)의 고전적인 주장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 Zuckerman, H. (1967). Nobel laureates in science: Patterns of productivity, collaboration, and authorship.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32(3), 391–403. https://doi.org/10.2307/2091086
왜 동반의 경험이 게재를 좌우하는가?
탑 저널에 게재하기 위해서는 원고의 품질과 완성도 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널의 독자를 고려한 메시지 전달의 구조와 커버레터에서의 어조, 짜임새 있는 보충자료(supplementary materials), 에디터와 주고 받는 메시지의 격식 수준을 포함하여 출판된 논문에서는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성패를 좌우합니다. Sekara et al.(2018)은 이를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라고 지칭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지식은 교과서를 통해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고, 오직 출판의 전 과정을 한 번 이상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시니어 저자의 역할이 돋보이는데, 낮선 곳으로의 투고라는 절차를 안내하는 역할, 곧 그 지식의 전수가 바로 동반의 핵심입니다.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커리어의 경험이 다시 커리어를 부르는 구조는 과학사회학의 연구영역에서 다루어진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Merton(1968)은 명성이 명성을 부르는 과학계의 순환을 ‘마태 효과(The Matthew effect)’라고 불렀습니다. 샤프롱 효과는 마태 효과가 저널이라고 하는 매우 구체적인 무대 위에서 작동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정량화하여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 Merton, R. K. (1968). The Matthew effect in science. Science, 159(3810), 56–63. https://doi.org/10.1126/science.159.3810.56
공저 전략으로 샤프롱을 어떻게 확보하는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대학원생과 신진 연구자에게는 불리한 소식으로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샤프롱은 타고나는 조건이 아니라 확보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Li et al.(2019)은 4개의 연구 분야에서 활동하는 신진 연구자들의 커리어를 조건이 서로 유사한 짝(pair)을 만들어 비교하였습니다. 커리어 초기에 최상위급 피인용 실적을 가지는 연구자와 함께 공저한 신진 연구자는 그렇지 못한 동료보다 이후의 커리어 전반에서 앞서 나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효과는 자신도 샤프롱 효과를 톡톡히 얻어 연구한 경험이 있는 시니어 연구자가 자신의 제자 성과도 끌어 올린다는 Nature가 발표한 연구결과(Malmgren et al., 2010)와 일치합니다.
- Li, W., Aste, T., Caccioli, F., & Livan, G. (2019). Early coauthorship with top scientists predicts success in academic careers. Nature Communications, 10, 5170. https://doi.org/10.1038/s41467-019-13130-4
- Malmgren, R. D., Ottino, J. M., & Amaral, L. A. N. (2010). The role of mentorship in protégé performance. Nature, 465(7298), 622–626. https://doi.org/10.1038/nature09040
다음과 같이 5단계로 이루어진 공저 전략을 제안합니다.
- 타겟 저널을 먼저 정하고, 그 저널에서 게재 이력이 있는 시니어 연구자의 목록을 만듭니다. 물론 지도교수 뿐만 아니라 학회에서 활동하는 연구자와 연구 네트워크를 탐색해야 합니다.
- 컨택의 명분을 연구 활동으로 내세워야 합니다. 상대방이 최근에 출판한 논문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을 시작으로 그 영역을 함께 확장해 가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 출발점이 됩니다.
- 역할과 저자의 순서를 공식적인 첫 미팅에서 합의를 합니다. 본인이 제1저자의 역할을 맡고, 시니어 연구자가 교신저자로 분담하는 것이 학계의 표준입니다.
- 투고의 전 과정을 기록합니다. 커버레터 문장과 에디터와의 커뮤니케이션 히스토리, 심사의견의 대응 논리 등을 꼼꼼하게 확보할 수 있다면 이것들은 본인의 자신이 됩니다.
- 성공적으로 게재가 되었다면 자신의 역할을 교대합니다. 다음 논문에서는 본인이 교신저자를 맡고 그 곁에 자신의 후배 연구자를 세워서 샤프롱의 계보를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 가상 사례: 지방 사립대에 재학 중인 교육학 박사수료생 A씨는 SSCI 등재 학술지에 단독 저자로 두 차례 투고하였으나, 두 번 모두 심사 진입에 실패하였습니다. 연구자는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학회 토론에서 만난 적이 있는, 해당 저널에 게재 이력이 있는 시니어 연구자에게 자신의 연구를 함께 확장하자는 공동연구를 제안하였습니다. 저자로서의 각자 역할은 첫 미팅에서 합의하였습니다. A씨 본인이 제1저자로서 전반적인 드래프트 작성과 통계분석을 맡고, 시니어 연구자는 교신저자로서 논문을 구성하는 프레이밍과 커버레터 작성, 그리고 심사 대응을 위한 전략 마련을 담당하였습니다. 투고한 논문의 원고는 두 차례의 수정 과정을 거치고 게재가 확정되었습니다. 연구자는 이듬해 같은 저널에 자신이 교신저자로서 논문을 투고하였고, 이번에는 심사와 게재까지 스스로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례는 프라임 컨설팅이 실무적으로 체험한 사실을 토대로 재구성한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
결론
Lawrence Bragg가 학술지 Nature에 보냈던 편지의 힘은 노벨상의 후광 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Nature가 어떤 원고를 원하는지를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의 보증이 그 편지에 실려 있었던 것입니다. Watson과 Crick은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담은 원고를 작성하였고, Bragg는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 분업의 형태가 탑 저널의 게재에 이르게 하는 표준적인 경로라는 점은 관련 연구의 결과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타겟을 원하는 저널의 이름을 적고, 그 저널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는 다른 연구자를 탐색하는 것이 공저 전략을 실천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