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의 서론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3악장으로 구성됩니다. 연구 영역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관찰된 빈틈을 드러내며, 그 빈틈을 자기 연구로 채우겠다고 선언하는 세 악장입니다. 수십 편의 논문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의 결과를 통해 등장한 악보가 CARS(Create a Research Space) 모형입니다. 문장의 틀만 있으면 오늘 바로 따라서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이 글의 순서 6개 항목
1980년대 초, 영국 애스턴대학교 언어연구소에서 한 명의 응용언어학자가 답답한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해외 유학생들이 논문의 다른 챕터는 그럭저럭 쓰는데, 서론에서는 하나같이 멈추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쓰라고 가르칠 만한 규칙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John Swales는 규칙을 찾는 대신에 자신이 직접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물리학, 생의학, 사회과학 논문 48편의 서론을 문장의 단위로 분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발견은 놀라웠는데, 연구분야가 서로 다르더라도 모든 논문에서의 서론들은 모두 같은 순서로 쓰여진 것입니다. 연구의 영역을 먼저 제시하고, 빈틈을 드러내며, 그 빈틈을 연구자가 채우겠다는 세 가지의 흐름. 훗날 CARS(Create a Research Space)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악보는 학술적인 글쓰기 교육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모형이 되었습니다. 논문의 서론을 쓰기가 막막한 분들에게 이 악보를 소개합니다.
서론에도 악보가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논문을 작성할 때에 서론이 가장 어려운 챕터라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공감을 해 왔습니다. 무엇으로 시작할지, 선행연구를 얼마나 소개할지, 그리고 연구의 필요성을 어디에서 주장해야 할 지를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디다. CARS 모형은 이 어려운 결정들을 순서로 펼쳐 놓은 악보입니다. 대중적으로 CARS 모형은 많은 학생들과 연구자들 사이에서 활용되고 있는 관행적인 절차로까지 여겨지고 있습니다.
Swales & Najjar(1987)는 물리학 영역과 교육심리학을 대표하는 다수의 논문 중에서 서론을 조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연구에서는 서론의 구성 방식이 일반적인 글쓰기 지침서가 제시하는 조언과는 어긋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글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진짜 규칙은 지침서가 아니라 바로 논문이라는 점이 CARS 모형이 내세우는 철학입니다.
- Swales, J. M., & Najjar, H. (1987). The writing of research article introductions. Written Communication, 4(2), 175–191. https://doi.org/10.1177/0741088387004002004
세 악장(movement)에는 각각 무엇을 써야 하는가?
1악장에서는 연구 영역을 확립해야 합니다. 이 연구가 어느 영역을 다루는지를 드러내고, 그 영역이 중요하다는 점을 주장하며, 기존의 문헌고찰을 통해 알려진 것들을 요약하는 자리입니다. 1악장을 풀어내는 문장의 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OOO은 최근 OOO분야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였다. 이에 관하여 지금까지의 연구는 OOO을 평가하여 왔다.” 연구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한두 문장과 선행연구의 결과를 압축해서 요약하는 두세 문장으로 1악장이 완성됩니다.
2악장에서는 빈틈을 확립하는 곳입니다. 1악장 다음으로 이어지는 문단의 흐름이 “그러나”로 전환되는 자리이고, 연구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되는 자리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러나 OOO을 확인한 연구의 사례는 찾을 수가 없다”라는 문장이 2악장을 서술하는 전형적인 문장의 틀입니다.
3악장은 빈틈을 점유하기 위해 마련된 곳입니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OOO을 목적으로 한다”로 시작하여 연구문제를 제시하고, 만약 필요하다면 논문의 구성과 범위를 안내합니다. 2악장이 다루는 빈틈의 성격과 3악장에서 진술하는 연구의 목적이 서로 단절되지 않고 이어질 때 3개의 악장으로 작성된 논문은 심사위원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악보는 연구 분야마다 어떻게 달라지는가?
악보가 같아도 연주하는 방법은 연구 분야마다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Swales & Najjar(1987)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3악장에서 연구의 결과를 미리 밝히는 서론 작성 방식이 물리학 저널에서는 전체의 4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교육심리학 저널에서는 7%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서론에서 결과의 내용을 미리 드러내야 할지의 여부는 원칙이라기 보다는 타겟 학술지에서 드러나는 관행을 따라야 합니다.
연구 분야에 따라 악장의 강세(stress)도 달라져야 합니다. Samraj(2002)는 서로 유사한 두 연구 분야의 서론들을 비교하였는데, 보전생물학 영역에서의 서론이 야생동물행동학 분야의 서론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더 내세우며 연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수상 이력이 있는 12편의 논문을 분석한 Anthony(1999)는 소프트웨어공학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서론이 CARS의 프레임워크를 추종하는 것과 동시에 예외적으로는 용어의 정의와 예시를 추가로 요구한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Hirano(2009)는 같은 연구분야라도 브라질 및 포르투갈어로 작성한 논문과 영어로 작성한 논문의 악장 구성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CARS 모형을 참고하여 서론을 쓸 때에는 적어도 3편의 타겟 학술지 논문에서 드러나는 악장의 연주 방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 Samraj, B. (2002). Introductions in research articles: Variations across disciplines. English for Specific Purposes, 21(1), 1–17. https://doi.org/10.1016/S0889-4906(00)00023-5
- Anthony, L. (1999). Writing research article introductions in software engineering: How accurate is a standard model? IEEE Transactions on Professional Communication, 42(1), 38–46. https://doi.org/10.1109/47.749366
- Hirano, E. (2009). Research article introductions in English for specific purposes: A comparison between Brazilian Portuguese and English. English for Specific Purposes, 28(4), 240–250. https://doi.org/10.1016/j.esp.2009.02.001
3악장으로 이루어지는 서론을 쓰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하는 다섯 단계는 무엇인가?
CARS 모형에 따라 서론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5단계를 따라야 합니다.
- 타겟 학술지의 최근 논문 3편을 선택하고 서론에서 1-2-3 악장의 경계를 표시합니다. 어느 부분에 ‘그러나’가 등장함과 동시에 반전을 꾀하는지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 1악장을 작성합니다. 연구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한 문장과 선행연구의 요약을 포함하는 두세 문장으로 만듭니다. 특히, 선행연구의 요약은 기존의 연구결과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흐름을 짜임새있게 정리해야 합니다.
- 2악장을 작성합니다. “그러나”로 시작하면서 빈틈을 지적하는 한두개의 문장을 만듭니다.
- 3악장을 씁니다. “이에 따라 본 연구의 목적은 OOO를 수행함에 있다”와 연구문제, 그리고 만약 학위논문을 작성한다면 각 챕터의 구성과 연구의 범위까지를 커버해야 합니다.
- 작성한 서론 초안의 모든 문장에 악장 번호를 매깁니다. 만약 번호를 매기기가 애매한 문장은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거나 과감하게 삭제해야 합니다. 만약 악장 번호가 1-2-3으로 부드럽게 이어진다면 초안을 완성한 것입니다.
| 가상 시나리오: 행정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생 C씨는 학술지의 서론을 작성하는 데 3주동안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페이지 이상의 분량으로 문장을 만들어 보았지만, 지도교수는 썩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C씨는 타겟 학술지에 게재된 3편의 논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각 논문들의 서론에 악장 번호를 붙이고 CARS 모형의 흐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작성한 초안에 등장하는 26개의 모든 문장에 번호를 붙였습니다. 1악장에 해당하는 문장이 19개, 3악장 문장이 7개이었으나, 2악장으로 분류할 만한 문장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선행연구를 소개한 후에 연구의 목적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중간의 악장이 누락된 것이었습니다. 연구자는 1악장으로 표시한 9개의 문장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새로운 문장을 서술해서 2악장을 넣었습니다. 완성된 서론의 초안을 체크한 지도교수는 논리적인 흐름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이 사례는 프라임 컨설팅이 실무 현장에서 체험한 실제의 상황을 참고하여 재구성한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 CARS 모형은 무엇인가요?
A. 학술논문을 이루는 챕터 중에서 서론의 표준 구조를 세 악장으로 정리한 모형입니다. 악장은 (1) 연구 영역의 확립, (2) 빈틈의 확립, 그리고 (3) 빈틈의 점유로 이어지게 됩니다.
Q. 학술지 서론의 분량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요?
A. 만약 학술지를 작성한다면 타겟 학술지를 참고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최근에 타겟 학술지가 출판한 논문 3편의 서론 분량을 카운트하고 평균 분량을 계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출판된 3편의 논문을 수집해서 서론의 분량을 세어 평균을 계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학위논문의 서론 챕터는 분량에서는 더 길지만 드러나야 하는 흐름은 동일합니다.
Q. 서론에서 연구의 주요 결과를 미리 밝혀도 되나요?
A. 연구자가 소속한 연구분야의 관행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연구결과를 미리 예고하는 서론이 물리학 저널에서는 전체의 45%, 교육심리학 저널에서는 7% 미만을 차지하였습니다. 최근에 출판된 3편의 타겟 학술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Q. 세 악장의 순서를 바꾸어도 되나요?
A. 실제로 서론 내에서도 1악장과 2악장이 몇 차례에 걸쳐서 순환하기도 합니다. 다만 1악장에서 2악장으로, 그리고 2악장에서 3악장으로 흐르는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처음부터 3악장으로 시작하는 서론은 맥락이 없는 주장으로 읽히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Q. 석사학위 논문, 박사학위 논문의 서론을 작성할 때에도 CARS 모형을 사용할 수 있나요?
A. 물론입니다. 학위논문을 구성하는 전형적인 서브 챕터(sub-chapter)인 연구의 필요성과 연구 목적, 그리고 연구 문제가 바로 세 악장을 일컫는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연구의 필요성을 포함하는 문단이 1악장과 2악장을, 그리고 연구 목적과 연구 문제를 담은 단락이 3악장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Q. 서론과 이론적 배경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A. 서론에서 등장하는 선행연구의 요약은 빈틈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전략입니다. 반면에 이론적 배경은 연구의 전체를 지배하는 이론과 변수에 관한 내용을 고찰하고 연구가설을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적, 문헌적인 근거를 확보하는 단계입니다. 만약 어떠한 논문의 서론에서 문헌고찰의 내용이 길게 나열되어 있다면 반드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론
Swales가 48편의 논문 서론에서 발견한 것은 천재들 만이 알고 있는 작성 비법이 아니라 모두가 거치고 있었던 과정이었습니다. 출판 경험이 풍부한 연구자들도 서론을 쓸 때에는 항상 백지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자가 다루려는 영역을 먼저 표시하고, 기존의 선행연구가 다루지 못했던 빈틈의 흐름을 보이며,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한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서론을 쓴다는 것은 악보를 옆에 두고 연주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