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시리즈를 완주하고 난 뒤에 밀려오는 이상한 허전함을 경험해 보셨는지요? 스트리밍 시대의 새로운 시청 양식인 몰아보기(binge-watching)와 그 이면의 정서인 시청 후 공허감에 대해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몰아보기(binge-watching): 시청의 문법을 바꾼 스트리밍 혁명”
몰아보기는 하나의 시리즈를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연속적으로 시청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연구자들은 통상 한 자리에서 두세 편 이상을 연이어 보는 것을 몰아보기로 정의합니다. 이 시청 양식을 대중화한 결정적인 계기는 2013년에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시리즈의 전편을 하루에 공개하는 배급 모델을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매주 한 편씩을 기다리던 약속 시청(appointment viewing)의 시대가 저물고, 시청자가 시청의 속도와 분량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문형 시청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자동 재생과 다음 화 예고, 클리프행어로 설계된 서사는 시청의 중단을 어렵게 만들며 몰아보기를 스트리밍 시대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게 하였습니다.
몰아보기 연구의 초기 국면은 이 행동을 문제적 시청이나 중독의 틀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상의 내부로 들어간 연구들은 더 섬세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Flayelle과 동료들은 몰아보기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질적 연구를 통하여, 몰아보기가 병리적인 통제 상실에서 계획된 여가의 향유에 이르는 넓은 스펙트럼 위에 존재한다는 점을 규명하였습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그 동기와 경험의 질은 시청자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발견은 몰아보기 연구가 행동의 빈도 측정을 지나 경험의 의미 탐구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법론적인 전환점을 제공하였습니다.
- Flayelle, M., Maurage, P., & Billieux, J. (2017). Toward a qualitative understanding of binge-watching behaviors: A focus group approach. Journal of Behavioral Addictions, 6(4), 457-471.
“시청 후 공허감: 완주의 기쁨 뒤에 오는 것”
몰아보기의 정서적인 경험에서 흥미로운 점은 시청이 끝난 이후에 있습니다. 시리즈를 완주한 시청자들은 성취감과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상실감과 허전함을 보고합니다. 이 정서를 이해하는 유력한 이론이 준사회적 이별(parasocial breakup)입니다. Cohen(2004)은 시청자가 좋아하는 등장인물과 형성하는 준사회적 관계가 실제의 인간관계와 유사한 애착의 구조를 가지며, 그 관계가 끝날 때 실제 이별과 닮은 고통의 반응이 나타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몇 날 며칠을 함께 보낸 서사의 세계와 인물들이 마지막 화와 함께 사라지는 경험, 몰아보기는 이 이별을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만드는 시청 양식인 것입니다.
- Cohen, J. (2004). Parasocial break-up from favorite television characters: The role of attachment styles and relationship intensity.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21(2), 187-202.
공허감의 또 다른 결은 죄책감과 후회입니다. Reinecke et al.(2014)은 미디어 이용이 회복과 즐거움을 제공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미루었다는 자기 지각과 결합될 때 죄책감을 유발하여 웰빙의 효과를 잠식한다는 점을 규명하였습니다. 밤을 새워 시리즈를 완주한 아침의 감정이 복합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울러 Granow et al.(2018)은 몰아보기가 자율성의 지각과 통제 상실의 지각 사이에서 웰빙에 상반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몰입이었는가, 멈추지 못한 시청이었는가에 따라 같은 몰아보기에 따른 심리적인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 Reinecke, L., Hartmann, T., & Eden, A. (2014). The guilty couch potato: The role of ego depletion in reducing recovery through media use. Journal of Communication, 64(4), 569-589.
- Granow, V. C., Reinecke, L., & Ziegele, M. (2018). Binge-watching and psychological well-being: Media use between lack of control and perceived autonomy. Communication Research Reports, 35(5), 392-401.
시청 후 공허감은 아직 확립된 척도가 존재하지 않는 신생의 정서 개념입니다. 준사회적 이별의 상실감과 시간 소진의 후회, 통제에 대한 양가적인 지각이 뒤섞인 이 경험의 구조는, 기존 척도의 조합만으로는 타당하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경험의 결을 당사자의 언어로 발견하는 질적 접근이 이 연구주제의 타당한 출발점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몰아보기가 전 세계 공통의 시청 양식이 된 지금, 한국 시청자의 경험을 다룬 연구는 국제 학술 공동체에 비교문화적인 기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프라임 컨설팅을 방문한 의뢰인은 OTT 산업의 실무 경력을 가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수료자이었습니다. 의뢰인은 몰아보기 이후의 공허한 감정이라는 착안점은 신선했으나, 척도가 없는 정서를 어떻게 연구로 성립시킬지 방법의 벽 앞에 있었습니다. 프라임은 개념이 미확립된 주제일수록 질적 탐구가 그 자체로 기여가 된다는 점을 안내하였으며, 몰아보기 경험이 풍부한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층인터뷰의 설계와 준사회적 이별과 죄책감의 문헌을 잇는 이론적인 틀의 구성을 지도하였습니다.
의뢰인은 OTT 시리즈의 몰아보기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수행하였으며, 주제분석(thematic analysis)의 절차에 따라 공허감의 구조를 범주화하였습니다. 분석을 수행한 결과, 서사 세계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이 남기는 상실감과 소진된 시간에 대한 후회, 다음 콘텐츠를 무한히 탐색하는 쳇바퀴의 피로, 그리고 그럼에도 몰입의 순간을 긍정하는 양가적인 감정이 시청 후 공허감을 구성하는 주제로 도출되었습니다. 공허감이 깊은 몰입 이후에 나타나는 정서적인 대가라는 이 해석은, 몰아보기를 중독의 틀로 이해해 온 접근에 대한 반론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