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과 태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직장 내 괴롭힘 연구의 학술적인 출발점은 유럽입니다. Leymann(1996)은 조직 내에서 특정한 개인을 향해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적대적인 행위를 모빙(mobbing)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하며 이 분야를 개척하였습니다. 이후에 Einarsen(2000)은 스칸디나비아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를 종합하여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적인 경계를 정교화하였습니다. 괴롭힘을 규정하는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부정적인 행위가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여 피해자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일회적인 갈등과 괴롭힘을 구별하는 기준이 바로 반복성과 힘의 비대칭에 있습니다.
- Leymann, H. (1996). The content and development of mobbing at work. European Journal of Work and Organizational Psychology, 5(2), 165-184.
- Einarsen, S. (2000). Harassment and bullying at work: A review of the Scandinavian approach. Aggression and Violent Behavior, 5(4), 379-401.
우리나라의 간호 조직에는 이 현상을 가리키는 고유한 이름이 있습니다.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의 ‘태움’입니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교육을 명분으로 후배에게 가하는 질책과 무시, 배제의 관행을 의미합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업무의 긴장과 만성적인 인력 부족, 그리고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결합하며 굳어진 현상입니다. 태움이 사회적인 의제로 떠오른 이후, 간호계는 제도적인 개선을 모색해 왔으나 현장의 경험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괴롭힘이 간호사에게 남기는 상흔은 실증적으로 확인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서, Laschinger et al.(2010)은 신규 간호사를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서 괴롭힘의 경험이 소진을 심화시키고 직무와 경력에 대한 태도를 악화시킨다는 점을 규명하였습니다. 괴롭힘은 간호 인력의 이탈과 환자안전의 위협이라는 조직적인 비용으로 되돌아옵니다.
- Laschinger, H. K. S., Grau, A. L., Finegan, J., & Wilk, P. (2010). New graduate nurses’ experiences of bullying and burnout in hospital settings. Journal of Advanced Nursing, 66(12), 2732-2742.
괴롭힘의 결과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주목할 개념이 조직침묵(organizational silence)입니다. Morrison & Milliken(2000)은 구성원들이 조직의 문제에 대한 의견과 우려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집합적인 현상을 조직침묵으로 개념화하였습니다. 침묵은 무관심의 산물이 아닙니다.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체념과, 말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방어적인 선택입니다. 괴롭힘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구성원에게 침묵은 생존의 전략이 됩니다.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이 다음의 표적이 되는 광경을 지켜본 조직에서, 입을 닫는 것은 가장 합리적인 적응이기 때문입니다.
- Morrison, E. W., & Milliken, F. J. (2000). Organizational silence: A barrier to change and development in a pluralistic world.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5(4), 706-725.
침묵이 길어진 조직에서 자라나는 정서가 조직냉소주의(organizational cynicism)입니다. Dean et al.(1998)은 조직냉소주의를 조직이 진실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믿음과 조직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 그리고 이를 반영하는 비판적이고 경멸적인 행동 성향으로 구성되는 태도로 정의하였습니다. 냉소적인 구성원은 조직의 개선 노력마저 보여주기에 불과하다고 해석합니다. 괴롭힘이 방치되고 침묵이 일상이 된 조직에서, 구성원이 조직의 진정성을 신뢰할 이유는 사라져 갑니다. 괴롭힘에서 침묵으로, 침묵에서 냉소로 이어지는 경로는 조직의 자정 능력이 붕괴되는 악순환의 구조인 것입니다.
- Dean, J. W., Brandes, P., & Dharwadkar, R. (1998). Organizational cynicism.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3(2), 341-352.
태움이라는 문화특수적인 현상을 조직침묵과 조직냉소주의라는 보편적인 이론 개념과 연결하는 과정은 해외저널의 관점에서 뚜렷한 매력을 가집니다. 한국 간호 조직의 고유한 맥락은 국제 학술 커뮤니티에 신선한(?) 연구의 장을 제공하며, 보편 이론은 그 맥락을 세계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 주기 때문입니다. 문화특수성과 이론적인 보편성의 결합이야말로 국내 연구자가 해외저널의 문을 여는 유력한 전략입니다.
프라임 컨설팅을 방문한 의뢰인은 종합병원의 임상 경력을 가진 간호학 연구자였습니다. 의뢰인은 태움의 경험을 다루는 연구를 해외저널에 게재하기를 원했으나, 태움을 소진이나 이직의도와 연결하는 설계는 이미 다수의 문헌이 축적되어 있어 차별성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프라임은 결과변수를 조직 수준의 태도인 조직침묵과 조직냉소주의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괴롭힘이 침묵을 거쳐 냉소로 이어지는 관계의 구조를 연구모형으로 설계하도록 지도하였습니다.
의뢰인은 임상간호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하였으며, 위계적 회귀분석과 PROCESS macro를 활용한 매개효과 분석을 통해 연구가설을 검증하였습니다. 분석을 수행한 결과, 태움의 경험은 조직침묵과 조직냉소주의에 통계적 유의수준에서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조직침묵은 태움의 경험과 조직냉소주의의 관계를 부분매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괴롭힘이 구성원의 입을 닫게 하고, 닫힌 입이 조직에 대한 냉소를 키운다는 경로가 의뢰인의 연구 결과에서 확인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