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지를 생성하는 도구의 시대, 시각 디자이너에게는 어떤 역량이 새롭게 요구되는가. 생성형 AI 디자인 도구와 디자이너 역량의 재정의에 대해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생성형 AI 디자인 도구: 디자이너의 손을 대신하고 눈을 요구하다”
텍스트를 입력하면 몇 초 만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성형 AI 도구들은 시각디자인의 작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시안의 탐색과 무드보드의 구성, 배경의 생성과 리터칭에 이르는 디자인 실무 과정에 생성형 도구가 빠르게 스며들었고, 디자인 소프트웨어들은 생성 기능을 표준 사양으로 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작업의 기술로 쌓아 올린 디자이너의 정체성이 도구의 진화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변화의 본질을 짚은 연구는 Verganti et al.(2020)이 대표적인데, 연구자들은 AI 시대의 디자인에서 인간의 역할이 만드는 행위에서 방향을 정하는 행위로 이동한다는 점을 분석하였습니다. AI가 해법의 생성을 무한에 가깝게 확장할수록,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를 정의하고 생성된 대안들 가운데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 인간의 판단이 오히려 희소한 자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의 경쟁력이 디자인 숙련에서 문제의 정의와 심미적인 판단, 그리고 AI와의 협업을 지휘하는 능력으로 재편된다는 연구자들의 통찰은 디자이너 역량을 새롭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학술적인 과제임을 보여줍니다.
- Verganti, R., Vendraminelli, L., & Iansiti, M. (2020). Innovation and design in the age of artificial intelligence. Journal of Product Innovation Management, 37(3), 212-227.
역량(competency) 연구의 출발점은 McClelland(1973)에서 비롯되는데, McClelland는 지능검사와 학력이 실제 직무의 성공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을 비판하며, 우수한 수행자를 평범한 수행자와 구별해 주는 특성, 곧 역량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역량 연구는 지식과 기술, 태도의 결합체로서의 역량을 정의하고, 직무별 역량모델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역량모델은 교육과정의 설계와 채용, 평가의 기준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직무를 바꿀 때마다 역량의 재체계화가 학술과 실무의 공동 과제로 떠오릅니다.
- McClelland, D. C. (1973). Testing for competence rather than for “intelligence.” American Psychologist, 28(1), 1-14.
문제는 생성형 AI 디자인 도구가 요구하는 역량이 아직 어디에도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관련한 논의는 프롬프트 작성의 요령에서 저작권의 쟁점, 협업 프로세스의 재설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헌에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이 상황에 적합한 연구의 설계가 문헌고찰과 델파이(Delphi)의 2단계 결합입니다. 먼저 체계적인 문헌고찰(systematic literature review)로 흩어진 논의들을 수집하여 예비 역량의 후보군을 도출하고, 이어서 전문가 패널의 델파이 조사로 각 역량의 타당성과 역량 간의 위계 구조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문헌이 개념의 재료를 제공하고, 전문가의 합의가 개념의 타당성을 보증하는 상호 보완적인 연구 설계이기도 합니다.
이 설계에서 델파이의 엄밀함을 지탱하는 것은 판정의 기준입니다. Lawshe(1975)가 제안한 내용타당도 비율(content validity ratio; CVR)은 패널의 규모에 따른 최소 기준값을 제공하여, 어떤 역량 항목을 채택하고 기각할지를 연구자의 자의가 아닌 통계적인 기준으로 판정할 수 있게 합니다. 아울러 델파이의 절차를 정리한 Hasson et al.(2000)은 패널의 선정과 라운드의 설계, 합의 판단의 보고에 이르는 실행의 표준을 제공합니다.
- Lawshe, C. H. (1975). A quantitative approach to content validity. Personnel Psychology, 28(4), 563-575.
- Hasson, F., Keeney, S., & McKenna, H. (2000). Research guidelines for the Delphi survey technique. Journal of Advanced Nursing, 32(4), 1008-1015.
생성형 AI 디자인 도구의 활용에 요구되는 시각 디자이너의 역량을 체계화한 의뢰인의 KCI급 학술지 논문컨설팅 후기에 대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프라임 컨설팅을 방문한 의뢰인은 디자인 실무와 교육 경력을 함께 가진 연구자였습니다. 의뢰인은 생성형 도구의 확산으로 디자인 교육과정의 개편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역량의 항목들을 어떤 근거로 도출하고 무엇으로 타당화할지 설계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프라임은 문헌고찰로 예비 역량을 도출하고 델파이로 타당화하는 2단계 설계를 제안하였으며, 문헌 검색의 범위와 포함 기준, 그리고 디자인 실무자와 교육자, AI 도구 전문가를 아우르는 패널 구성의 기준을 지도하였습니다.
연구의 1단계에서 의뢰인은 생성형 AI와 디자인 역량을 다룬 국내외 문헌을 체계적으로 고찰하여, 프롬프트 구사와 산출물의 심미적인 평가, 윤리의 인식, 인간-AI 협업 디자인 등을 포괄하는 예비 역량의 후보군을 도출하였습니다. 2단계에서는 전문가 패널을 대상으로 복수 라운드의 델파이 조사를 수행하였습니다. 각 역량 항목의 타당성은 CVR의 최소 기준으로 판정하였으며, 수렴도와 합의도를 함께 보고하여 판단의 안정성을 확인하였습니다. 특히 상위역량과 하위역량의 소속 관계가 적절한지를 패널에게 별도로 평가받아 역량 체계의 위계 구조 자체를 타당화하였다는 점이 이 연구의 정교함이었습니다. 그 결과, 심미적 판단과 윤리적인 책임을 상위에 두는 역량 체계가 마련되었습니다.
생성형 AI와 디자이너의 역량은 디자인학의 교육과 실무가 모두 주목할 수 있는 연구주제입니다. 역량의 항목을 도출하기 위하여 문헌적인 근거와 타당화의 절차(예., 델파이), 그리고 체계의 위계적 구조까지 삼박자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역량 연구의 산출물은 교육과정과 평가의 기준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기여하는 시사점이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