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의 하교 시간은 오후 한 시, 부모의 퇴근 시간은 오후 여섯 시입니다. 그 사이의 다섯 시간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정책, 늘봄학교에 대해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늘봄학교: 초등 돌봄 절벽에 놓인 국가의 다리”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은 역설적으로 맞벌이 가정의 위기를 가져옵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종일 보육에 기대던 가정은, 이른 하교와 방학이라는 초등의 시간표 앞에서 돌봄의 공백을 맞닥뜨립니다. 초등 입학기에 부모, 특히 어머니의 경력단절이 몰리는 현상은 이 공백의 크기를 보여줍니다. 돌봄 서비스와 부모의 노동시장 참여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연구로도 뒷받침되어 왔습니다. Morrissey(2017)는 관련 연구들을 종합하여 돌봄 서비스의 이용 가능성과 비용이 부모의 노동 참여를 좌우하는 조건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돌봄의 공급은 가족 복지의 문제이자 노동과 교육의 문제인 것입니다.
- Morrissey, T. W. (2017). Child care and parent labor force participation: A review of the research literature. Review of Economics of the Household, 15(1), 1-24.
늘봄학교는 이 공백에 놓인 국가의 응답입니다. 기존의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을 통합하여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가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는 체제이며, 시범 운영을 거쳐 전국의 초등학교로 확대되었습니다. 원하는 모든 학생을 받는다는 보편성의 원칙과 저녁까지 이어지는 운영 시간은 초등 돌봄 정책의 전환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제 질문은 제도의 설계에서 제도의 경험으로 이동합니다. 늘봄학교는 학부모의 일과 가정에 실제로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는가?
“일-가정의 양립: 시간의 문제이자 마음의 문제”
일-가정 양립 연구의 고전적인 틀은 Greenhaus & Beutell(1985)이 마련하였습니다. 이들은 일과 가정의 역할이 충돌하는 양상을 시간의 갈등과 긴장의 갈등, 행동의 갈등으로 구분하였습니다. 하교와 퇴근 사이의 공백은 시간 갈등의 전형적인 형태이지만, 갈등은 시간표에만 있지 않습니다.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마음의 무게, 곧 긴장의 차원이 함께 작동합니다. 돌봄 정책의 효과를 온전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확보되었는가와 함께 마음이 놓였는가를 함께 물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Greenhaus, J. H., & Beutell, N. J. (1985). Sources of conflict between work and family roles.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0(1), 76-88.
시행 초기의 정책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질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늘봄학교의 경험을 담은 척도는 아직 없으며, 나아가서는 학부모가 이 제도를 어떻게 이용하며 무엇을 얻고 무엇을 망설이는지의 경험 자체가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용의 실태 조사에 앞서 경험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가 수행되어야 이후의 측정과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질적 자료에서 경험의 주제를 도출하는 표준적인 절차는 Braun & Clarke(2006)가 체계화한 주제분석(thematic analysis)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자료의 친숙화에서 코딩과 주제의 생성, 검증에 이르는 이 절차는 정책 경험 연구의 신뢰를 뒷받침하는 방법의 틀로 광범위한 연구영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 Braun, V., & Clarke, V. (2006). Using thematic analysis in psychology. Qualitative Research in Psychology, 3(2), 77-101.
프라임 컨설팅을 방문한 의뢰인은 초등 교육 현장의 경력을 가진 교육학 연구자였습니다. 의뢰인은 늘봄학교의 학부모 만족도를 설문으로 조사하는 연구를 구상하였으나, 시행 초기라 검증된 측정도구가 없고 만족도의 수치만으로는 정책의 함의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혀 있었습니다. 프라임은 제도 도입기에는 경험의 구조를 밝히는 질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안내하고, 늘봄학교를 이용하는 맞벌이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심층인터뷰의 설계를 제안하였습니다. 자녀의 학년과 이용 시간대가 다양한 참여자를 포함하는 선정 기준, 일-가정 양립의 변화를 묻는 인터뷰 질문, 그리고 주제분석의 절차를 함께 가이드하였습니다.
의뢰인은 늘봄학교 참여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수행하였으며, 주제분석으로 경험의 구조를 범주화하였습니다. 분석을 수행한 결과, 하교와 퇴근 사이의 공백이 메워지며 얻은 시간의 안도, 아이를 저녁까지 학교에 두는 데서 오는 미안함과 죄책감, 프로그램의 질과 안전에 대한 신뢰가 이용의 지속을 좌우하는 조건, 그리고 돌봄의 걱정이 줄며 일에 몰입하게 된 변화가 경험의 주제로 드러났습니다. 늘봄학교의 효과가 시간의 확보는 물론이거니와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의뢰인의 연구 결과는 정책의 성패가 운영 시간의 연장과 함께 프로그램의 질과 학부모 소통에 달려 있다는 함의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제도나 정책이라도 도입된 이후에는 질적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새로운 정책의 초기에는 검증된 척도 혹은 비교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성급한 수치화보다는 경험의 구조를 밝히는 질적 연구가 먼저 수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이후의 척도 개발과 효과 평가가 마련될 수 있는 개념의 토대가 되며, 시행 초기의 자료를 선점한 연구는 그 분야의 출발점으로 오랫동안 인용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정책 실무 관점에서의 함의도 뚜렷합니다. 예를 들어서 학부모의 이용을 가르는 조건이 프로그램의 질과 안전에 대한 신뢰라면, 늘봄학교의 확대는 수용 인원과 운영 시간의 목표와 함께 프로그램의 내실과 학부모 소통의 체계를 갖추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한편, 죄책감이라는 정서의 발견은, 이용을 망설이는 학부모를 홍보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을 살펴야 할 대상으로 다시 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