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팁과 전략

투고 & 심사 전략

논문 원고의 ‘상각(amortization)’: 논문심사를 받는 동안 원고의 값어치는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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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원고가 가지는 학술적 가치는 투고 접수일부터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참신성, 선점권, 자료의 시의성, 그리고 커리어 일정이라는 네 곳에서 손실이 쌓입니다. 관련 문헌은 연구분야에 따라 적게는 9개월에서 많게는 19개월의 심사 지연이 발생한다고 말하며, 만약 주제의 선점을 상실한다면 21%의 인용 손실이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상각률(amortization rate)을 정확하게 진단한다면 그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순서 7개 항목
  1. 논문 원고의 상각은 무엇인가?
  2. 원고 한 편은 심사와 출판 과정에서 얼마나 기다리는가?
  3. 상각은 어떤 계정(account)에서 발생하는가?
  4. 선점을 빼앗긴 원고는 실제로 얼마를 잃게 되는가?
  5. 커리어의 시계는 상각을 어떻게 가속하는가?
  6. 상각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7. 결론

1858년 6월, 찰스 다윈은 한 통의 우편물 앞에서 얼어 붙었습니다. 말레이 제도에서 앨프리드 월리스가 보낸 논문의 원고(manuscript)였습니다. 그 안에는 다윈이 이십 년 가까이 서랍에 묵혀 둔 자신의 이론과 거의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더 많은 연구자료를 수집하겠다는 이유로 발표를 미루는 사이, 찰스 다윈의 우선권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다행이도 라이엘과 후커의 주선으로 두 사람의 연구는 같은 해 7월 1일 린네 학회에서 함께 발표되었습니다. 다윈은 가까스로 자신의 지분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 일화에서 지연(delay)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을 만든 곳은 다윈 자신의 책상 서랍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원고를 묵히는 서랍은 저자의 책상이 아니라 바로 저널의 심사 시스템 안에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회계학적인 개념을 빌려 심사와 출판을 기다리는 동안 논문의 가치가 줄어드는 현상을 다루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투고 전략을 함께 제시합니다.

논문 원고의 상각은 무엇인가?

회계학에서는 유형자산 및 무형자산의 가치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줄어드는 것을 각각 감가상각(depreciaton) 및 상각(amortization) 이라고 말합니다. 유형자산인 기계는 구입한 날부터 장부가치가 줄어들고 감가상각이 진행됩니다. 이 글은 동일한 논리를 무형자산의 특징을 가지는 저널에 투고한 원고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논문 원고의 학술적인 가치는 투고 접수를 확인하는 메일이 저자에게 도착한 날부터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한편의 논문에서 드러나는 참신성은 유사한 연구가 함께 진행되는 동안 조금씩 낡아집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연구자들이 유사한 연구 결과를 먼저 발표한다면 선점권이 사라집니다. 조사 시점이 오래된 자료는 심사위원들로부터 낡았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커리어 관리에 필요한 시간도 함께 줄어들게 됩니다.

학술계는 이 손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도의 특별한 이름을 만들어서 관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름이 없는 비용은 계산되지 않고, 계산되지 않는 비용은 관리되지 않습니다. 이 글은 오랫동안 진행되는 논문 심사와 출판 대기 기간이 원고의 가치에 끼치는 손실을 상각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이름을 만든 목적은 마냥 한탄만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계산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행히도 상각의 규모를 평가한 관련 연구의 사례들이 이미 관찰되고 있습니다.

원고 한 편은 심사와 출판 과정에서 얼마나 기다리는가?

Björk & Solomon(2013)은 Scopus에 색인된 135개 저널의 논문 2,700편을 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투고부터 게재까지의 전체 기간을 계산하였습니다. 지연이 가장 짧은 곳은 과학기술의학 분야였고, 화학 영역은 평균 9개월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경제 및 경영 분야에서는 평균 18개월이 걸렸습니다. 같은 원고라도 어느 영역의 저널에 투고하느냐에 따라 대기 기간이 2배로 늘어나는 셈입니다. 서로 다른 저널마다 평균 대기 기간이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편차를 분석해보니 저널과 저널 사이(between journal)의 평균 차이보다 같은 저널 안에서 논문과 논문 사이에(within journal) 벌어지는 차이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동일한 저널에 투고를 하더라도 어느 원고는 3개월 만에, 그리고 다른 원고는 1년이 지나야 게재 확정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저널이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하는 평균 심사 시간과 게재 기간은 단순한 참고 자료일 뿐, 원고의 대기 기간을 100% 보장하는 약속이 결코 아닙니다. 그만큼 심사기간과 게재 확정, 그리고 게재까지 걸리는 시간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Björk, B.-C., & Solomon, D. (2013). The publishing delay in scholarly peer-reviewed journals. Journal of Informetrics, 7(4), 914-923. https://doi.org/10.1016/j.joi.2013.09.001

Powell(2016)은 Nature가 발간한 기획 기사에서 게재를 기다리다 지친 연구자들의 사례를 모았습니다. 전자 투고(electronic submission)와 온라인 출판의 시대에서도 대기 기간이 단축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주장하였습니다. 원고를 투고한 후 첫 판정까지의 기간을 분석한 연구의 결과는 Huisman & Smits(2017)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각은 어떤 계정(account)에서 발생하는가?

상각은 4곳의 계정(account)에서 동시에 발생합니다. 첫째는 참신함(novelty) 계정입니다. 연구 내용이 가지고 있는 참신함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시간의 함수입니다. 심사가 진행되는 사이에 유사한 논문이 출판되면 원고의 참신성은 힘을 잃습니다. 둘째는 선점권(preemption) 계정입니다. 동일한 발견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에서는 출판의 순서가 연구자의 몫을 결정합니다. 셋째는 시의성(timeliness) 계정입니다. 만약 조사 연도가 오래된 논문이라면 심사위원은 연구의 시의성을 문제삼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패널 조사나 정책 자료를 활용하는 사회과학 영역이 이 지적에 가장 취약합니다. 넷째는 커리어(career) 계정입니다. 졸업 요건, 임용 지원, 재계약 심사에는 데드라인이 존재합니다. 원고의 장부가치가 유지되더라도, 데드라인을 지난 게재는 저자에게 애초부터 받아야 할 값을 돌려주지 못합니다.

네 계정의 상각률은 논문의 원고마다 서로 다릅니다. 최신의 키워드와 패러다임을 연구주제로 삼은 원고는 참신성 계정에서 상각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다수의 경쟁자가 같은 연구영역에서 목격된다면 선점권 계정이 위험합니다. 시의성이 적절한 연구 결과를 담은 원고에서는 조사자료 계정이, 그리고 졸업을 앞둔 저자의 원고는 경력 계정이 취약합니다. 아래에서 다루게 될 상각의 방어 전략은 이 진단에서 시작됩니다.

선점을 빼앗긴 원고는 실제로 얼마를 잃게 되는가?

선점권 계정의 손실은 오랫동안 추측의 영역에 있었습니다. 누가 언제 같은 연구 주제에서 경쟁하였는지를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Hill & Stein(2025)은 구조생물학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이 분야의 연구자는 단백질 구조를 풀면 그 솔루션이 Protein Data Bank라는 공개 DB에 등록됩니다. 따라서 DB 기록을 확인하면 동일한 단백질 구조를 두고 경쟁한 연구팀들의 유무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Hill & Stein(2025)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선점을 빼앗긴 논문은 상위 저널에 게재될 확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군다나 늦게 실린 논문은 승자의 논문보다 21% 만큼 덜 인용되었습니다.

Hill & Stein(2025)은 본래의 목적을 가지는 분석과는 별도로 설문조사도 함께 수행하였습니다. 현역으로 활동 중인 구조생물학자들에게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첫 번째 물음은, 다른 연구팀에게 연구결과를 먼저 빼앗긴 논문이 그래도 학술지에 실릴 확률은 얼마라고 생각하는가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그렇게 빼앗긴 논문은 인용을 얼마나 덜 받게 된다고 생각하는가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연구자들의 응답은 비관적이었습니다. 게재 확률은 67% 정도에 그치고, 인용은 59%나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세 편 중에 한 편은 아예 실리지 못하고, 게다가 인용은 절반 이상이 날아간다고 믿은 셈입니다. 그런데 실제 기록을 조사해 보니 결과가 정반대였습니다. 선점을 빼앗긴 논문의 85%도 결국 게재되었고, 인용 손실도 앞 단락에서 확인한 대로 21%에 그쳤습니다. 즉 연구자들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손실은 실제로 겪은 피해보다 두 배 이상 부풀려져 있었습니다. 다만 이 결과를 “선점을 빼앗겨도 괜찮다”라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설문조사의 결과와 비교하여 비록 낮은 수준이더라도 21%의 인용 손실과 상위 저널 진입 확률의 하락은 실제로 발생하는 손실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한다면, 두려워할 필요는 생각보다 적지만 서두를 이유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 Hill, R., & Stein, C. (2025). Scooped! Estimating rewards for priority in science.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33(3), 793-845. https://doi.org/10.1086/733398

커리어의 시계는 상각을 어떻게 가속하는가?

네 번째 계정, 즉 커리어의 손실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습니다. 세포생물학자인 Vale이 2015년에 발표한 결과입니다. Vale(2015)은 자신이 근무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 재학 중인 박사과정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박사과정에 들어온 학생이 자기 이름을 제1저자로 올린 첫 논문이 게재되기 까지 얼마나 걸렸는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학생들의 연령을 두 세대로 나누고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80년대에 졸업한 학생들은 첫 논문까지 평균 4.7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초반에 졸업한 학생들은 평균 6.0년이 걸렸습니다. 삼십 년 사이에 첫 논문이 나오는 시점이 1년 이상 늦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에 박사과정 기간은 5.7년에서 6.3년으로, 반년 정도만 늘었습니다. 과거에는 첫 논문을 제출하고도 졸업까지는 1년 정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첫 논문이 게재되는 시점과 졸업 일정이 거의 겹쳐 있습니다. 논문 한 편을 내는 데 수행해야 하는 실험의 수와 수집해야 할 자료의 양이 그 사이에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Vale(2015)의 연구 결과가 논문심사 지연에 대입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게재논문 실적이 필요한 대학원생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학생에게는 논문심사가 한 학기 늦어지는 일은 그냥 기다림이 아닙니다. 논문심사가 한 학기 밀리면 졸업도 한 학기 연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졸업 일정이 밀리면 교수 임용 시장으로 나가는 시점도 함께 늦어지게 됩니다. 논문의 내용과 가치에서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그 논문으로 저자가 얻을 수 있는 몫만 줄어드는 셈입니다. 참신성이나 선점권의 손실은 논문이 입는 손실이지만, 커리어의 손실은 연구자가 직접 겪는 손실입니다. 4개의 계정 가운데 커리어 손실에 의한 피해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니다.

상각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상각을 없앨 수는 없지만 상각률 만큼은 관리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다섯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첫째, 투고 전에 저널의 심사 속도를 체크해야 합니다. 다수의 저널은 웹사이트에 첫 심사 판정까지의 평균 기간을 공개합니다. 만약 공개된 자료를 찾을 수 없다면 SciRev와 같은 심사 경험 공유 사이트를 방문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근 게재 논문의 접수일과 게재일 표기를 직접 비교하는 방법도 상당히 유용합니다.

둘째, 원고의 상각률을 먼저 진단해야 합니다. 시의성 있는 자료를 쓴 원고, 경쟁이 붙은 연구주제를 다루는 원고는 상각이 빠릅니다. 상각이 빠른 원고일수록 저널의 명성보다는 심사와 게재 속도에 가중치를 두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셋째, 데스크 리젝을 빠른 손절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2일 만에 온 리젝에 따른 손실은 9개월 후의 리젝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치룰 수 있습니다.

넷째, 침묵만을 해서는 안됩니다. 저널이 안내한 심사 기간보다 오래 걸린다면 에디터 혹은 저널에 문의를 해야 합니다. 만약 문의를 해도 소식을 받지 못한다면 철회와 재투고 사이를 저울질해야 합니다.

다섯째, 만약 연구자가 속해 있는 영역이 관행을 허용한다면 프리프린트(pre-print)의 형식으로 선점했다는 도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Hill & Stein(2025)의 연구결과에서는 구조생물학자의 80%가 공식적으로 자신의 논문이 출판되기전에 공개를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연구 영역마다 허용되는 관행과 저널이 추구하는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투고 규정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상 사례: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P씨 P씨는 2023년 패널 자료를 사용하여 정책 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담은 논문 원고를 해외 유명 저널에 투고하였습니다. 하지만 투고를 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P씨는 에디터에 문의를 하였고, 심사위원의 섭외가 늦어지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졸업까지 남은 기간을 계산한 P씨는 원고를 철회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투고를 할 때에는 타겟 저널의 선정 기준을 바꾸었습니다. 첫 심사 판정까지 8주를 공지하는 저널을 선택하였고, 자료의 조사 연도와 정책 운영 시점의 관계를 서론에서 먼저 밝혔습니다. 원고를 투고한지 11주 만에 이번 저널에서는 메이저 리비전 판정을 받았고, 다음 학기에 게재가 확정되었습니다.
※ 위 사례는 프라임 컨설팅이 컨설팅 실무에서 경험한 실제 사례를 구성한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결론

찰스 다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858년의 위기에서 다윈을 구한 것은 운이 아니라 장치였습니다. 동료들이 공동 낭독이라는 절차를 만들어 지연의 비용을 상쇄해 주었습니다. 오늘날의 연구자에게는 그러한 후견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상각을 관리하는 수단을 저자가 스스로 마련해야 합니다. 저널의 심사 속도를 예상하고, 원고의 상각률을 진단하는 것이 바로 그 수단입니다. 관련 문헌에서 나타난 숫자는 수단의 값어치를 보여줍니다. 연구분야에 따라 9개월에서 18개월이 걸리는 대기 기간, 그리고 선점을 상실할 때 줄어드는 자신의 논문 피인용수가 관리의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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