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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ve’의 습격: AI가 바꿔 놓은 학술 언어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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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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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ve의 습격'은 ChatGPT가 선호하는 특정한 단어들이 2023년 이후에 게재된 학술 논문에 급격히 늘어난 현상입니다. PubMed에 게재된 논문의 초록을 분석한 결과, 2024년도에 출판된 논문 중에서 최소 13.5%에 AI 흔적이 확인되었고 그 단어들은 이제 학술 강연과 팟캐스트의 구어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이 글의 순서 7개 항목
  1. ‘delve의 습격’이란 무엇인가?
  2. ChatGPT는 왜 하필 이 단어들을 좋아하는가?
  3. ChatGPT 특유의 문체 흔적은 이제 논문의 영역 밖에서도 번지고 있는가?
  4. 그런데 고작 단어 하나가 왜 문제일까?
  5.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문 논문에서도 같은 일이 나타나고 있는가?
  6. 자신 만의 문체를 가꾸고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7. 결론: 파고들지 않은 글에 붙은 ‘파고들다’

‘delve’라는 단어는 2022년까지는 영문 학술 논문에서 매우 드물게 쓰이는 단어 중의 하나이었습니다. 그러나 2024년 이후에는 이 단어가 생의학 영역 논문의 초록에 과거와 비교하여 약 10배 이상의 빈도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초록의 첫 문장에 이 단어가 보이면 논문 원고 전체를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delve AI 문체’라는 현상을 하나의 단어가 걸어온 궤적을 따라 분석합니다. 학술 논문에서 나타나는 어휘 변화의 규모, ChatGPT가 논문에서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아왔던 단어들을 선호하는 이유에 관한 수수께끼, 구어체로의 확산, 단어 하나가 도대체 왜 그리도 문제인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문 논문에서 관찰되고 있는 유사한 현상을 차례대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delve의 습격’이란 무엇인가?

‘delve의 습격’이란 ChatGPT를 비롯한 AI 언어모델이 선호하는 특정한 단어들이 2023년 이후에 출판된 학술 논문에서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학술 영어의 어휘 지형이 크게 바뀐 현상을 의미합니다. 튀빙겐 대학교의 Kobak et al.(2025)은 이 변화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위하여 PubMed에 등록된 논문 초록 1,500만 건 이상을 대상으로 해마다 어떤 단어가 예상보다 많이 쓰여 왔는지를 추적하였습니다. 연구진은 이 지표를 ‘과잉 어휘(excess vocabulary)’라고 불렀습니다.

Kobak et al.(2025)은 2024년도에 ‘delves’, ‘showcasing’, ‘underscores’, ‘potential’, ‘crucial’ 등의 단어 빈도가 전례가 없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2024년에 출판된 논문 초록 중에서 최소한 13.5%가 언어모델의 도움으로 작성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연구진은 어휘 출현의 빈도 변화를 코로나19 시기의 어휘 변화와 빗대어 설명하였습니다. 2020년에는 ‘coronavirus’, ‘pandemic’처럼 내용을 담은 명사가 급증하였습니다. 하지만 2024년에는 연구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문체와 단어, 즉 논문이 잘 사용하지 않는 동사와 형용사가 급증하였습니다. 무엇을 연구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썼는지가 바뀐 것입니다.

  • Kobak, D., González-Márquez, R., Horvát, E.-Á., & Lause, J. (2025). Delving into LLM-assisted writing in biomedical publications through excess vocabulary. Science Advances, 11(27), eadt3813. https://doi.org/10.1126/sciadv.adt3813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의 언어학자인 Juzek과 과학철학자 Ward는 이 단어들을 체계적으로 식별하는 방법을 설계하였습니다. Juzek & Ward(2025)는 AI 언어모델의 사용 결과에 따라 이들 단어가 학술 초록에서 급격하게 나타난 것으로 판단되는 포커스 단어 21개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단어 중에서 ‘delve’, ‘intricate’, ‘underscore’가 대표적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학술 영어는 수백 년 동안 계속 변해 왔지만, 이번의 변화 만큼은 속도와 범위에서 과거와는 그 사례가 전혀 다릅니다. 수천 명의 논문 저자가 유사한 AI 도구를 사용해서 AI가 적어주는 단어를 그대로 받아 썼기 때문입니다.

  • Juzek, T. S., & Ward, Z. B. (2025). Why does ChatGPT “delve” so much? Exploring the sources of lexical overrepresentation in large language models. Proceedings of the 31s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mputational Linguistics (COLING 2025), 6397–6411. https://doi.org/10.48550/arXiv.2412.11385

ChatGPT는 왜 하필 이 단어들을 좋아하는가?

ChatGPT가 특정한 단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AI 모델의 구조나 학습 데이터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는 결론이기도 합니다 Juzek & Ward(2025)는 이 문제를 ‘어휘 과잉 표현의 수수께끼’라고 명명하고 추론이 가능한 원인을 하나씩 탐색하였습니다. 하지만 AI 모델의 구조와 알고리즘의 선택, 학습 데이터의 어휘 분포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delve’라는 단어의 출현이 증가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였습니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에는 ‘delve’가 드물게 출현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Juzek & Ward(2025)가 주목한 점은 인간의 피드백으로 모델을 조정하는 단계입니다. AI 언어모델은 학습을 완료한 후에 인간 평가자가 선호하는 답에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다듬어집니다. 예를 들자면, 평가자들이 특정한 어휘를 선호하였다면(예., 엄지 척) AI 모델은 그 어휘를 학습하였을 것입니다. Juzek & Ward(2025)이 수행한 AI 모델 비교 실험은 이 가설과 일치하는 결과를 보여주었지만, 온라인 실험 연구의 결과에서는 뚜렷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지 결과는 동일합니다. AI 언어모델은 비록 인간의 글을 학습했지만, 인간의 글과는 다른 형태의 어휘 분포를 갖지게 되었고, 그 분포가 다시 인간의 글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앞서 지식의 근친교배 게시물에서 다루었던 순환이 어휘 빈도의 출현 단계에서 관찰되고 있는 것입니다.

ChatGPT 특유의 문체 흔적은 이제 논문의 영역 밖에서도 번지고 있는가?

ChatGPT가 생성하는 특유의 문체는 이제 대화 속의 말로 번지고 있습니다. 학술 강연과 팟캐스트 대화에서도 유사한 단어사용이 급증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스플랑크 인간발달연구소의 Yakura et al.(2025)은 논문에서 관찰되는 어휘의 변화만으로는 AI의 문화적인 영향을 단정지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논문은 AI로 교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인간이 하는 말을 기록으로 분석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Yakura et al.(2025)은 유튜브에 업로드 된 36만 건의 학술 강연과 77만 건의 팟캐스트, 총 74만 시간 이상의 발화를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ChatGPT 출시 이후 ‘delve’, ‘comprehend’, ‘boast’, ‘swift’, ‘meticulous’와 같은 단어의 사용이 갑작스럽게 증가하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구진은 대본이 없이 말한 대화만을 스크리닝한 후에도 유사한 변화를 감지하였고, 인과 추론 방법론을 기반으로 이 변화를 ChatGPT 출시와 연결지었습니다.

  • Yakura, H., Lopez-Lopez, E., Brinkmann, L., Serna, I., Gupta, P., Soraperra, I., & Rahwan, I. (2025). Empirical evidence of large language model’s influence on human spoken communication. arXiv. https://doi.org/10.48550/arXiv.2409.01754

연구진은 이 현상을 ‘닫힌 문화적인 피드백 고리(“closed cultural feedback loop”)’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는 말로부터 말을 배운 기계가 자기만의 문화적인 특성을 갖게 되고, 그 특성이 다시 사람의 말을 바꾸는 순환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AI 언어모델이 등장한 이후, 이제는 언어의 변화가 논문이라는 문서에만 등장하지 않고 연구자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고작 단어 하나가 왜 문제일까?

단어 하나가 문제인 이유는 세 가지이며, 그것이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빌미’로서의 평가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체의 획일화는 인간 사고의 획일화를 가져오며, 비원어민 연구자에게는 역설적으로 가장 큰 부담을 가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delve’라는 단어 자체는 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하필 왜 그 단어인가에 있습니다.

첫째,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빌미입니다. Juzek & Ward(2025)가 수행한 실험에서는 피실험자들이 논문 초록의 첫 문장에 ‘delve’가 나오면 경계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심사위원과 편집자에게도 유사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AI 논문 철회 사례를 다루었던 앞선 게시물에서와 유사하게, 일반적으로 (해외) 학술지는 AI가 생성하는 특유한 표현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AI 사용의 단서로 여깁니다. 단어 하나의 선택이 논문 저자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둘째, AI에 의한 논문 문체의 획일화는 당연히 인간 사고의 획일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응용언어학자 Hyland(2002)는 학술적 글쓰기에서 저자의 목소리, 즉 저자 논문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표현과 특정한 주장의 방식이 저자에서 엿볼 수 있는 학문적인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동일한 AI 도구가 생성한 유사한 표현을 그대로 받아 쓰는 연구자들은 모두 동일한 학문적인 정체성을 갖게 될 뿐입니다. 논문에서 드러내는 표현이 같아지면 다른 저자라도 서로 강조하는 지점이 같아지고, 강조점이 같아지면 A, B, C 중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판단 여부도 같아지게 됩니다. Kobak et al.(2025)이 관찰한 문체와 단어의 수렴은 바로 이 과정에서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셋째, 비원어민의 서러움과 역설입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연구자는 문장을 번역하거나 교정하기 위해 AI를 사용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Kobak et al.(2025)의 연구 결과에서는 AI를 사용한 흔적이 특정한 국가의 저자가 게재한 논문에서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GPT 킬러의 신뢰성을 다루었던 앞선 게시물에서와 같이 비원어민이 구사하는 영어는 AI 탐지기에서 이미 오탐으로 탐지될 위험이 높습니다. 여기에 AI가 만들어준 ‘delve’까지를 문장에 넣게 된다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모양새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문 논문에서도 같은 일이 나타나고 있는가?

단연코, 국문 논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AI가 생성하는 특유의 표현은 특정한 단어 뿐만 아니라 특정한 접속 구문과 추상 명사의 나열, 그리고 한자어의 과다 사용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한자어의 과다 사용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적(的), ~적(的), ~적(的)입니다. 영어의 ‘delve’에 해당하는 AI 특유의 한글 표현을 식별하는 국내 문헌은 아직 수행된 사례가 없습니다. 하지만 프라임은 컨설팅 현장에서 클라이언트가 작성한 논문을 읽다 보면 AI로 작성된 문단이라는 것을 읽는 즉시 식별할 수 있습니다.

국문으로 작성된 AI 문체가 가지는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형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앞의 문장을 부정하고 뒤에 등장하는 문장을 강조하는 대조 구문이 하나의 문단에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둘째, 문단의 마지막 문장이 구체적인 결론 대신 몇 개의 추상 명사를 나열해주며 마무리를 짓습니다. 셋째, AI 도구가 등장하기 이전에 발표된 일상적인(?) 학술 논문에서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특정한 한자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문단 또는 문장은 인간 저자가 쓴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 만의 문체를 가꾸고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능한 많은 논문을 읽고, 연구자 자신만의 언어로 가능한 많은 글을 쓰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결론: 파고들지 않은 글에 붙은 ‘파고들다’

‘delve’라는 단어가 가지는 본래의 의미는 ‘땅을 파다’라는 동사입니다. 하지만 2024년부터 출판된 학술 논문에서 이 단어는 정반대의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본 연구는 OOOO를 깊이 파고든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논문은 이제 ‘본 연구의 저자는 직접 파고들지 않았다’라는 가능성을 알려주는 평가지표가 된 셈입니다. 파고들지 않은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파고들다’를 사용했다는 역설은 바로 ‘delve의 습격’에 관한 한줄 요약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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