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많은 지도교수들이 ChatGPT에 의존해서 학생의 논문을 읽고 판단하는 지도의 핵심 업무를 AI에 맡기고 있습니다. 지도교수의 연구지도 수준이 박사과정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라는 최근의 연구 결과에 비추어 본다면 이는 연구지도의 포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글의 순서 8개 항목
“한 박사과정 학생이 지도교수에게서 받은 논문 초안에 대한 지도 의견서에는 ‘위 내용을 바탕으로 더 구체적인 피드백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라는 문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지도교수는 학생의 원고를 읽지 않았고, ChatGPT가 만든 의견서를 자신의 이름으로 보냅니다.” 이 글에서는 지도교수가 ChatGPT에 의존하는 행태를 유형별로 분류하고, 왜 이것이 지도의 포기인지를 지도교수 책임에 관한 연구로 논증합니다. 나아가서는, 이 행태를 가능하게 한 구조와 학생이 취할 수 있는 대응을 다루겠습니다. 대학원 교육의 한 축이 빠르게 무너지는 현장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도교수의 ChatGPT 의존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지도교수가 ChatGPT에 의존하는 방식은 크게 네 가지 행태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각 행태는 지도의 서로 다른 요소를 AI로 대체합니다. 프라임 컨설팅은 석사학위 및 박사학위 논문 컨설팅을 수행하면서 관찰할 수 있었던 학생들에게서 반복적으로 확인한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사례는 익명화하였습니다.
첫째, 복사기형입니다. 학생의 논문 초안을 ChatGPT에 업로드하고 출력된 커멘트를 자신의 지도 의견으로 보냅니다. 서두에 소개한 사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유형의 지도 의견서는 원고의 쪽수나 표를 특정하지 않고, 어떤 논문에나 붙일 수 있는 지적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앞서 AI 논문 심사 게시물에서 다루었던 심사의견의 오류가 지도 의견서에서 그대로 재현됩니다.
둘째, 이중 잣대형입니다. 학생에게는 AI 사용을 금지하거나 부정행위로 경고하면서 자신은 강의 자료와 지도 의견에 AI를 사용합니다. 2025년 5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Northeastern 대학교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한 학생은 교수의 강의 자료에서 ChatGPT에 입력한 프롬프트와 팔이 여러 개 달린 사람의 그림을 발견하였습니다. 해당 교수의 강의계획서는 학생의 AI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학생은 8,000달러의 수업료 환불을 요구하였고, 대학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셋째, 논문심사 현장 실종형입니다. 학위논문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제출한 논문을 전혀 읽지 않고 AI가 만든 심사의견만을 제출합니다. 학생이 특정한 분석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심사의견이 이 유형에서 등장합니다. 넷째, 위임 방임형입니다. 학생이 질문하면 ‘ChatGPT에 물어보라’고 답하고 면담을 끝냅니다. 연구지도 시간은 줄어들고, 결국 학생은 답이 없는 질문을 가지고 돌아가야만 합니다.
넷째, 기밀 유출형입니다. 아직 출판되거나 게재가 되지 않은 학생의 논문과 원시자료를 AI 서비스에 통째로 업로드합니다. 학생의 연구 성과가 외부 서버로 전송되고, 서비스 약관에 따라 학습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앞서 다룬바와 같이, 주요 학술지는 심사 원고의 AI 업로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위논문의 원고에 대해서는 이 기준을 적용하는 대학이 드물어 보입니다. 학생은 자신의 원고가 어디로 갔는지 알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왜 이것이 연구지도의 포기인가?
지도교수의 이러한 행태가 연구지도의 포기인 이유는 지도교수가 추구해야 할 핵심적인 책임은 AI가 대신 해줄 수 없는 관계적인 활동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서리 대학교의 Lee(2008)는 박사과정 지도교수들과의 면담을 바탕으로 연구지도의 다섯 가지 방법을 식별하였습니다. 과제를 관리하는 기능적인 접근과 학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키우는 문화화, 스스로 따져 묻게 하는 비판적인 사고, 독립 연구자로 자립시키는 해방, 그리고 관계 형성입니다. 이 가운데 AI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첫 번째뿐입니다. 나머지 넷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만 가능합니다.
Lee, A. (2008). How are doctoral students supervised? Concepts of doctoral research supervision. Studies in Higher Education, 33(3), 267–281. https://doi.org/10.1080/03075070802049202
지도교수의 연구지도 수준이 학생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의 여부가 대규모 조사(large-scale study)로 확인되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Dericks et al.(2019)은 63개국의 박사과정생 40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하고 만족도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를 평가하였습니다.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연구지도 수준의 질이 학과의 질과 동료의 질을 압도하는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지도교수를 AI로 대체한 학생은 만족도의 가장 큰 원천을 잃는 셈입니다.
Dericks, G., Thompson, E., Roberts, M., & Phua, F. (2019). Determinants of PhD student satisfaction: The roles of supervisor, department, and peer qualities. Assessment & Evaluation in Higher Education, 44(7), 1053–1068. https://doi.org/10.1080/02602938.2019.1570484
다른 한편으로는, 연구지도의 방임은 학생의 정신건강과도 직결됩니다. 벨기에 겐트 대학교의 Levecque et al.(2017)은 박사과정생 3,659명을 대상으로 지도교수의 지도 방식과 정신건강의 관계를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 결과에서는 지도교수가 방임적일수록 학생의 정신건강 문제에 위험이 높아지고, 지도교수가 영감을 주는 방식으로 지도할수록 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Nature가 2019년 대학원생 6,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지도교수와의 관계는 박사과정의 경험을 좌지우지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나타났습니다.
Levecque, K., Anseel, F., De Beuckelaer, A., Van der Heyden, J., & Gisle, L. (2017). Work organization and mental health problems in PhD students. Research Policy, 46(4), 868–879. https://doi.org/10.1016/j.respol.2017.02.008
Woolston, C. (2019). PhDs: The tortuous truth. Nature, 575(7782), 403–406. https://doi.org/10.1038/d41586-019-03459-7
“ChatGPT에게 물어보세요”라는 지도교수의 주문은 위의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방임의 가장 완성된 형태입니다. 과거에서 볼 수 있었던 방임의 형태는 학생과의 면담을 미루거나 학생이 논문을 보내도 지도교수가 읽지 않는 소극적인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방임은 AI가 만든 커멘트가 제법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방임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학생은 자신의 지도교수로부터 연구지도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자신의 논문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도대체 누가 지도교수의 방임을 가능하게 하였는가?
이러한 지도교수의 방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연구지도를 평가하지 않는 교수 업적의 평가 체계, 지도 학생 수의 증가, 그리고 대학의 AI 장려 정책이 결합된 구조입니다. 교수의 승진과 재임용은 논문 편수와 연구비 수주로 결정되고, 학생을 얼마나 잘 지도하였는지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평가 항목이 아닙니다. 연구지도에 할애한 시간은 보상받지 못하는 시간이고, 따라서 AI는 그 시간을 줄여 주는 대단히 매력적인 도구로 등장하였습니다.
대학의 태도도 이러한 행태를 뒷받침합니다. 미국의 Northeastern 대학교는 학생의 환불 요구를 거부하면서 대학이 교육과 연구의 모든 측면에서 AI 활용을 장려한다고 밝혔습니다. 학생이 AI를 사용하는 것은 부정행위로 처벌하면서, 반면에 교수의 AI 사용은 혁신으로 장려하는 모순적인 태도입니다. 학생이 이 모순을 지적할 통로는 사실상 없습니다. 지도교수는 학생의 졸업과 추천서를 쥐고 있고, 대학은 이들 교수를 보호합니다.
다만 현행 작동하는 구조가 면책 사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같은 구조 안에서도 학생의 논문을 열심히 밑줄 그어 가며 읽는 교수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지도를 평가하지 않는 시스템은 지도를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라, 지도가 온전히 교수 개인의 직업윤리에 맡겨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윤리를 AI에 넘긴 것은 구조가 아니라 바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학생은 무엇을 잃고 있는가?
앞선 게시글에서 도제식 연구지도의 붕괴를 다루었듯이, 연구 역량의 핵심은 문서화되지 않은 지식, 즉 암묵적인 지식(implicit knowledge)이며 이는 지도교수와 함께 하는 과정에서만 전달됩니다. 학생이 ChatGPT에 의존하는 것과 지도교수가 ChatGPT에 의존하는 것은 서로 다를바가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암묵적인 지식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차이는 후자의 경우에는 학생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점입니다.
학생은 AI를 사용해서는 안되지만 교수는 가능하다는 이중 잣대는 규범의 내면화를 무너뜨립니다. 학생은 지도교수를 통해 연구 공동체에서 작동하는 규범을 배웁니다. AI 사용을 금지하는 교수가 스스로 AI를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생은 그 규범이 원칙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노스이스턴 대학교 학생의 사례에서는 ‘우리에게는 쓰지 말라면서 자신은 쓴다’는 말은 규범이 무너지는 순간을 정확히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규범을 잃은 학생은 이후에 자신이 AI를 사용하더라도 원칙보다는 적발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학생이 작성한 논문 원고에 대한 통제권의 상실은 비교적 적게 논의가 되고 있지만 가장 구체적인 피해이기도 합니다. 기밀 유출형 지도교수는 학생이 제출한 아직 완성되지 않았거나 게재가 되지 않은 논문을 학생의 동의 없이 AI의 서버에 전송합니다. 학생은 자신의 논문이 어떤 AI 서비스에 입력이 되었는지, 또는 그 서비스의 약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앞서 다룬 AI 아첨 게시물이 보여 주듯이, AI가 대신 만들어 주는 연구지도의 의견은 학생의 논문에 동조하는 경향까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학생은 자신이 작성한 논문에서 나타나는 약점을 지적받을 기회마저 잃게 됩니다.
지도교수의 AI 사용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연구지도 과정에서 AI 사용이 허용되는 경계는 지도교수가 자신의 판단을 보조하기 위해 쓰는 것까지이며, 학생의 원고에 대한 비판이나 판단을 대체하거나 학생의 논문을 학생 동의 없이 외부에 업로드하는 것은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합니다. AI를 사용하는 교수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지도교수가 최신 통계 기법을 빠르게 학습하거나 자신이 쓴 의견서의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AI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읽기와 판단을 대체할 때 발생합니다.
표. AI 논문 지도 과정에서 지도교수의 AI 사용 경계
| 행위 | 허용 여부 | 근거 |
| 자신의 지식을 정리하거나 최신 기법을 파악하는 데 AI 사용 | 허용 | 지도교수 자신의 학습에 해당 |
| 자신이 직접 작성한 지도 의견의 문장 교정 | 허용 | 판단은 인간이, AI는 표현만을 교정 |
| 학생의 논문을 읽은 후에 먄약 놓진 부분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AI를 사용 | 조건부 허용 | 학생으로부터 동의를 얻은 후에 논문의 익명화가 반드시 전제 |
| 학생의 논문을 전혀 읽지 않고 AI가 만들어 준 커멘트를 자신의 지도 의견인것처럼 행세 | 불허 | 연구지도의 핵심 업무를 AI로 대체, 학생 기만 |
| 학위논문 심사의견을 AI로 생성하여 제출 | 불허 | 심사 책임 포기, 학술지 기준과 동일 |
| 학생의 미출판 논문과 원시자료를 학생 동의 없이 AI에 업로드 | 불허 | 기밀 침해, 연구 성과 유출 |
| 학생에게는 AI 금지, 자신은 미공개 사용 | 불허 | 이중 잣대, 규범의 권위 상실 |
그렇다면 학생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학생의 대응은 관계의 비대칭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학생-교수와의 정면 충돌보다는 기록과 구체적인 질문으로 대응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지도교수는 학생의 졸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의 대응 목표는 지도교수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논문을 지키는 것입니다. 프라임 컨설팅은 다음의 과정을 제안합니다.
- 지도교수로부터 받은 연구지도 의견을 자신의 논문과 서로 대조하고, 논문에 없는 내용을 지적받거나 쪽수를 특정하지 않은 항목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 지도교수엑 면담을 요청할 때 ‘논문 12쪽 표 3의 분석 방법 선택이 적절한지’처럼 논문의 특정 위치를 지목하는 질문을 준비합니다. 반드시 논문을 읽어야 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며 연구지도를 받습니다.
- 자신의 논문과 원시자료를 AI 서비스에 업로드하지 않도록 정중하게 요청하고, 이메일로 기록을 남깁니다. 아직 출판이 되지 않았거나 게재가 안된 자신의 연구에 대한 기밀성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히 학생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 학과와 대학원의 지도교수 변경 규정, 고충 처리 절차, 대학원생 권익 기구를 미리 파악합니다. 학교에 공식적으로 어필하지 않더라도 관련 규정과 프로세스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 연구지도의 공백이 장기화되면 공동 지도교수의 지정이나 외부 전문가의 점검을 대안으로 모색합니다.
지도교수 자가 진단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자신을 지도하는 지도교수가 있으시다면 다음의 다섯 문항을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 문항 이상에 ‘아니오’를 선택하기 어렵다면, 여러분의 연구지도 상당 부분은 이미 AI에 위임된 상태입니다.
- 지난 한 달 동안 지도교수는 여러분의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읽은 적이 있습니까?
- 최근에 지도교수로부터 전달받은 연구지도 의견서에서 논문의 쪽수나 표 번호… 등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이거나 특정한 지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까?
- 지도교수가 여러분의 논문을 AI 서비스에 업로드하기 전에 학생의 동의를 구한 적이 있습니까?
- 학생에게 적용하는 (교내) AI 사용에 관한 규칙을 지도교수 자신에게도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습니까?
- 학생이 질문하였을 때 ‘AI에 물어보라’라고 답하지 않고 직접 설명한 것이 최근 기억에 있습니까?
지도교수에게 드리는 세 가지 질문
여기에서, 요약 대신 질문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지도교수가 ChatGPT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문제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질문이 던져지지 않아서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지도 학생의 논문을 AI에 업로드하기 전에 학생에게 그 사실을 알릴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알릴 수 없는 이유가 곧 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둘째, 학생에게 금지한 것을 자신이 하고 있다면, 그 규칙은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규칙이 학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교수의 연구지도 역시 같은 규칙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규칙이 통제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 규칙은 처음부터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셋째, 지도 학생이 졸업한 뒤 자신에게서 배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 답에 AI가 만든 연구지도 의견서 외에 과연 다를 것이 있을까요? Dericks et al.(2019)의 연구 결과에서 관찰된 바와 같이 학생에게 있어서 지도교수의 존재는 대학원 생활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부분입니다. 그 자리를 AI에 내어 준 지도교수는 가장 귀중하게 여겨야 할 곳을 스스로 비워 둔 것입니다. 그 빈자리는 학생의 이력이 아니라 교수의 커리어에 남게 됩니다.